1억명 기다리는 게임 ‘롤드컵’ 결승 미리 보기
루나 관리자
2023-11-19 00:34:21 81 0

관중석을 가득 채운 6000명 모두가 숨을 죽였다. 지난 12일 밤 부산 사직실내체육관. 무겁고 팽팽한 고요를 뚫고 선수들이 마우스를 다루는 소리, 중계진이 해설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온라인 게임 ‘2023 리그오브레전드(LoL·롤) 월드 챔피언십(이하 월즈)’ 준결승. 한국 최강 ‘T1′과 중국 최강 ‘징동 게이밍’이 붙었다. 이날 만약 T1이 탈락하면, 자국에서 하는 롤드컵 결승에서 중국 팀끼리 우승을 다투게 된다. T1과 징동에 소속된 한국 선수들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 대표로 한솥밥을 먹었다. 어제의 동지를 오늘은 적으로 만난 셈이었다.

2대1로 T1이 앞서는 가운데 4세트, 시작은 T1이 불리했다. 그러나 T1 ‘페이커(27·이상혁)’ 선수의 수퍼 플레이로 경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마침내 게임의 최종 목표인 징동의 넥서스를 파괴하는 순간, T1의 ‘케리아(21·류민석)’ 선수가 외쳤다. “징동 다운! 뉴진스 나와! 고척돔 나와!”



결승전 시청자는 약 1억명.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행사인 미식축구의 수퍼볼보다 많다. 젊은 팬들을 미래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마스터카드, 메르세데스 벤츠 등이 후원한다. 트로피는 ‘티파니앤코’가 만든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이 발표한 지난해 세계 e스포츠 시장 규모는 13억9000만달러(약 2조원)에 이른다.

올해 롤 결승전은 라이벌인 한중전이 성사됐다. 각 리그 최고의 스타인 페이커와 더샤이(강승록·24) 선수가 뛰는 ‘T1′ 대 ‘웨이보 게이밍 포 아우디(WBG)’의 승부. 축구에 비유하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전성기 리오넬 메시의 FC 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맞붙는 셈이다.




“저는 오늘 T1의 우승을 기원하며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저는 쓰레기 주울 시간이 없어, 보육원에 5만원 후원하고 왔습니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 T1 팬들이 올리는 ‘선행 인증글’이다. T1이 우승할 수 있도록 공덕을 쌓겠다는 뜻이다. 경기 승리를 위해 쓰레기를 줍는다는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의 철학과 행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인터넷에는 “웨이보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같은 글도 올라온다. 어떤 팀이 잘할 때 언론들이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성적이 하락한다는 징크스에서 나온 미신으로, 웨이보가 부진에 빠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우리 T1 월드클래스 아니에요”도 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이렇게 말한 후 손흥민의 기량이 월드클래스로 올랐다.

팬들이 이토록 간절한 것은 T1의 월즈 우승이 2016년 이후 멈춰 있기 때문이다. T1은 최다 우승 팀(3회)이지만, 그 후 지금껏 트로피를 가져오지 못했다. 준우승만 두 번. 작년에는 언더독이던 한국팀 DRX에 패해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신화의 조연으로 남았다. 아버지가 프로 야구 LG팬인 한 20대 T1 팬은 “7년도 이렇게 힘든데, 아버지는 어떻게 29년이나 기다렸는지 정말 존경스럽다”고도 했다.





이번 시즌 T1은 언더독에서 시작했다. 페이커 선수의 부상으로 1승 7패로 부진했지만, 그의 복귀와 함께 도장깨기로 올라왔다. 8강에서는 나머지 한국팀이 모두 탈락하고 중국팀만 남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팬들은 2005년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이창호 9단이 만들어 낸 ‘상하이 대첩’을 떠올린다. 당시 이창호 9단은 한국 기사들이 전부 탈락한 가운데 5연승을 거두며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중국 창하오 9단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아 있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올해 결승전 무대에는 BTS를 배출한 하이브의 걸그룹 ‘뉴진스’와 프로젝트 그룹 ‘하트스틸’이 오른다. 뉴진스는 월즈 무대의 첫 완전체 K팝 가수, 공식 주제곡 ‘Gods’를 부른다.

“모두들 너를 찬양하고 있잖아/ 너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잖아.”(Gods 中)

하트스틸은 ‘K/DA’의 보이그룹 버전이다. 엑소 백현 등이 멤버다. 결승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6시부터는 서울 광화문에서 전야제로 라이브 콘서트가 열린다. (여자) 아이들, FT아일랜드, 머쉬베놈, 앨런 워커, 니키 테일러 등이 출연한다. 이를 보려고 많은 중국 팬이 방한했다.

중국 팬들이 더샤이를 부르는 애칭은 “강형(강+형)”. 해외 K팝 팬들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페이커 선수의 애칭도 “상혁이형”이다. 이번 일요일에 한 명은 웃고 한 명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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